인생공부 - 나눔공간
불안을 창조의 에너지로 전환하기
창조 인생공부를 수행하는 영혼들은 주기적으로 감정적 암흑 상태를 겪는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그것을 창조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창조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법은 각자가 지닌 재능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사실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대표될 수 있는, 부정적 감정들은 창조 에너지를 제대로 펼쳐내기 위한 하나의 소스가 될 수 있다. 또한 불안의 감정은 지금 여기서 나의 자아가 의식적으로 창조 에너지를 제대로 발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영혼의 긴급한 경보음이기도 하다.
감정적 암흑 상태
창조 인생공부는 주기적으로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자기도 뜻하지 않게 의식적으로나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에도,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 부정적 감정에 허우적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경우가 많다. 이것은 영혼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기 스스로 창조한 것이다. 하지만 의식적 관점, 몸과 마음이라는 자아의 관점에서 보면 난데없이 밀어닥쳐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바닷가의 해일과 같은 것이다. 요컨데 창조 인생공부 수행자들은 극단적인 감정의 기복을 지니고 있고, 이것은 좋을 때는 한없이 좋은 조증과 바닥으로 꺼질 때는 끝없는 암흑 속으로 빠져드는 울증의 복합적 감정 상태를 주기적으로 너울친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광인처럼 보여질 것이다. 실제 당대에 유명한 예술가나 뛰어난 창작자들은 주변에서 미치광이란 소리를 들었다. 백남준이 그랬고, 이외수와 멀리는 고흐 등이 그랬다. 창조 인생공부의 주요 패턴인 극단적 감정적 기복 덕택으로(ㅋ~) .
또한 기복이 큰 극단적 감정을 겪는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세밀한 감정들에게 대해서도 끊임없는 체험의 기회가 주어진다. 어떤 때는 너무나도 섬세하여 깨끗히 청소되어 있는 마루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울에 대해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다. 때로는 돼지우리 같이 너저분한 곳에서도 최고의 안락함을 맛보며 그 집의 주인에게 찬사를 보낼 때도, 찬사가 아니더라도 담담히 불평없이 넘어가기도 한다. 누구나 아름답다 칭찬하는 작품에 대해 쓰레기라고 거침없이 비하하고, 참혹하게 죽은 시체에서 인간의 고귀한 아름다움을 건져내기도 한다. 그들은 삶 전체에 걸쳐 너무나도 다양한 감정 체험의 기회들을 끊임없이 제공받게 된다. 왜 그럴까?
불안은 창조를 위한 하나의 소스
불안의 감정이(물론 다양한 부정적 감정들도 포함하여) 창조를 위한 하나의 소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불안이라는 감정은 사실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버릴 것도 아니고, 악마의 장난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이라면 결코 겪지 말아야할 것을 나만 겪고 있는 사이코가 바로 나라는 생각도 별로 도움이 안된다. 창조 인생공부의 영혼에게는 그 감정을 충분히 경험할 이유가 있고 또한 고귀한 가치가 있다. 영혼이 자아에게 자기 창조력을 발현하기 위해 주는 도움의 손길이다. 둘째, 불안이라는 감정이 들 때, 달리 표현하자면 극단적 생각들 감정적 암흑 상태에 놓일 때는, 바로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인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창조 인생공부 수행자가 지닌 자신만의 독특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불안이라는 감정 자체를 창조적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불안이라는 감정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고, 그 감정이 일어나게 한 진짜 원인인자기 창조의 표현이라는 목적에 맞게 에너지를 제대로 쓰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된 창조 에너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누군가는 글로 노래로 때로는 춤으로 스포츠로 게임으로 또는 그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발명품 등 다양한 형태의 유무형의 창조적 행위들로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 창조 인생공부의 영혼들은 이런 자기 표현의 기회를 무한히 제공받고 있다. 불안으로 대표되는 감정적 암흑의 상태를 통해, 또한 그 반대극인 환희에 찬 감정적 엑스타시를 통해서도 영혼이 터득하고자 하는 하나의 목적 자기 파워의 표현을 위해.
하지만 이것이 자각되지 못하고 지속되는 감정적 너울에 휩쓸려간다면, 이 에너지 역류가 일어나고 육체적 증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치료가 잘 안되는 고질적인 질병으로 드러나게 된다. 매트릭스의 경우는 유전적인 문제가 있는 질병을 타고날 수도 있다. 그러니 조심하길 그리고 감정적 소용돌이가 휩싸여있는 나라면 가급적 빨리 그 에너지를 그 합당한 목적에 맞게 써주시길. 그러지 못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내가 꾼 꿈에서와 같이. 잘 날아가던 나비들이 우수수 떨어져 죽어버렸듯이, 나의 영혼 또한 내 꿈의 나비와 같이 될지도 모른다.
맹점 -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는 모래지옥
감정적 기복과 다양한 감정 체험에 대한 의미를 확연히 인식한다 하더라도, 창조 인생공부 수행자 앞에는 하나의 큰 난관이 놓여있다. 그것은 창조 인생공부 수행자들이 지닌 맹점이다. 이것은 늘상 다니던 개미들의 행로에 진을 친 모래지옥과도 같은 것이다. 개미 동료들이 여러번 당했기에, 매 순간 주의를 기울이고 유심히 살피려고 해도 결코 보이지 않는 모래지옥. 창조 인생공부의 맹점은 바로 개미에게 있어 모래지옥과 같은 것이다.
자기 재능과 창조 그리고 창조력을 보지 못하는 것이 맹점이다. 이 맹점 때문에 바로 극단적 감정 기복을 겪으면서 자신이 하던 프로젝트를 또는 예술 작품을 글쓰기, 노래, 작곡, 작사, 창작 등등 다양한 활동들에 대해 자포자기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희망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결책은 맹점에 있다. 이 맹점으로 인해 겪게되는 극단적 감정 기복을 창조 에너지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무척 조심할 것이 있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한 감정적 기복은 어느 때인가 외부로 폭발하게 되고, 이것은 주변의 관계에 균열을 만들고 심하게는 관계의 단절 또는 자신이 뜻하지 않은 상황의 전개를 맛보게 될 것이다.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이러한 점을 자각하고 내면의 창조 에너지로 승화시키기 전까지는 지속적으로. 그러니 느긋히 서두르시길. 서두르기만 하면 나의 내면을 보지는 못하고, 행위 중독에 함몰될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느긋하기만 하면 때를 놓쳐버릴 수 있으니. 느긋하지만 서둘러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들고 있는 감정을 결코 놓치지 말고 회피하지 말아야한다. 그 이면의 에너지를 잡아야한다. 그것을 바로 내 창조의 원동력이다. 내 영혼이 나에게 끊임없이 부여하고 있는 신의 창조력이기도 하다.
나의 전환기
글쓰는 본인도 꽤 오랜시간을 반복하다가 방금 전에 이 점을 깨달았다. 불만 가득한 상태와 불안한 상태가 사실은 내 안에 있는 창조 에너지의 표현을 촉발하는 기회였다는 점을. 이 글을 써내려가기 전까지만해도, 나 자신은 불안이라는 감정에 휩쌓여 있었고, 과거와 동일한 패턴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 불안에 대처했던 방법으로는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해 과거의 불만들을 끄집어 내어 감정적으로 마구 공격하고, 나를 챙겨주고 알아달라고 떼쓰고, 그런 후에도 완전히 풀리지 않아, 잠을 잠깐 자기도 했고, 책을 들어 읽어도 보고, 늦은 새벽시간 부엌에가서 내일 먹을 반찬들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면의 불안은 여전히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과거에는 이보다 더한 반응들로 이 불안에 저항하였다. 삶에 대한 새로운 가치나 의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버라이어티 쇼프로를 보거나, 이런저런 영화들을 무작위로 보거나, 더 심하게는 포르노에 탐닉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루종일 또는 며칠씩을 지나고 나면, 그 불안으로 인해 받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들게된다. 하지만 이 불안은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었다. 또 일정 시간이 흐르면 동일한 감정이 일어난다. 또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 쇼프로, 영화, 드라마, 포르노나 무의미한 인터넷 쇼핑 등등. 이러한 패턴은 심하되었고 중독증으로 까지 확대되었다. 이것이 아니면 해소할 수 없는 상태까지 가게되었다.
이 모든 패턴은 최근 며칠 사이에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어쩌면 이 패턴이 반복되기 전에 이 점을 자각하였더라면, 내 삶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지혜롭게 상황에 대처했을 것이고, 사랑의 체험이라는 결과를 창조했을 것임은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 글은 내가 놓친 부분에 대한 반성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의 반복 패턴 때와는 다르게 한 가지 자각한 바가 있다는 점에서, 나 조차 참을 수 없는 나를 인내하고 수용하고 끊임없는 기회를 제공해 준 공동체 멤버들과 내 영혼에 대한 감사의 글이기도 하다.
요컨데, 나는 불안의 감정을 일으키는 에너지를 한 편의 글로 전환하였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재능에 따라 불안이라는 감정자체를 춤으로 조각으로 또는 그림으로 아니면 노래로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자기만의 독창적이고 독특한 방법으로 말이다. 이것은 분명 가능하다. 나는 안된다는 생각을 내려놓자. 절대 볼 수 없어도 창조 작업을 시작해 보자. 사실 나와 당신의 감정이 요동칠 때, 우리가 행해왔던 방법들이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고, 이 글을 보고 있는 바로 당신도 잘 알고 있다. 특히 창조 인생공부는 재능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다만 그 당사자가 잘 볼 수 없지만, 분명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내 감정을 노래하고, 내 불안을 춤추고, 내 불만으로 변화의 글을 짓고, 내 분노를 작품으로 만들어라! 노래하면 할수록, 춤추면 출수록, 만들면 만들수록, 글로 쓰면 쓸수록, 더 많은 감정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은 인간종 전체가 겪고 있는 실제하는 에너지들이다. 나에게는 그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표현할 책임이 있다. 내가 이 땅에 온 이유와 목적이며, 내가 영혼으로서 가치롭게 살 수 있는 길이다. 바로 내가 사랑이 되어 걸을 수 있는 길!
나는 극단적 감정 기복을 겪을 때면 과거와 동일하게 파괴적이고 소모적이며 중독증으로의 회피라는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과 같이 자기 진리의 탐색이라는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여타의 표현으로 이어나가겠다는 결단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